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엘 파실 전투 (문단 편집) == 결말 == >'''분명 그것은 한 사람의 젊은 영웅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위대한 영웅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었지만….''' 누구도 신뢰하지 않던 21세의 애송이 장교가 그야말로 기적을 이루어냈다. 3백만 시민들이 적국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참상을 막아세운 양 웬리 중위는 '엘 파실의 영웅'으로 칭송받았으며, 무려 '''2계급 특진''' 결정이 내려져[* 양 웬리가 엄청난 공을 세우긴 했지만, 동맹 정부과 군부는 시민과 부하를 내버리고 도망친 아서 린치 소장의 추태를 어떻게든 감출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이 조치에는 양 웬리에게 엄청난 포상을 내려 여론의 관심을 돌리는 불순한 의도가 섞여있었다.] 임관 1년여 만에 소령 계급장을 달게되었다. 전사자 이외에는 2계급 승진을 인정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었기에 양 웬리 중위의 특진은 우주력 788년 9월 19일 10시 25분에 [[대위]] 승진, 같은 날 16시 30분에 소령으로 승진시켜 1계급 승진을 2번 실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외전 5권의 설정. 1권에서는 6월 12일 오전 9시에 대위로 진급하고, 같은 날 13시 '''소령'''으로 진급했다고 되어있다.] 양 웬리 '대위'의 재임기간은 '''6시간 5분(21,900초)'''. 자유행성동맹군의 건군 이래 최단기록이었다. 그리고 양 웬리를 추앙하는 수많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이네센으로 귀환한 뒤 양 웬리는 기자회견, 인터뷰, 표창식, 회식 등등, 과도한 스케줄에 깔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군 공보부와 연줄이 있는 입체 TV 방송국에서는 거액의 출연료와 러닝 개런티를 대가로 린치 부인과의 대담에 출연해달라고 요구했고, 젊은 여성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방송과 잡지의 취재공세도 이어졌다. 지옥같은 일주일이 지나자 한숨을 돌릴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이류 이하 매스컴들이 제안한 터무니없는 기획을 들어야 했다. 그 중에는 죽은 [[양 타이롱]]의 전 부인과 만나게 해주겠다는 제안도 있었는데, 양은 전 부인의 반응이 내심 궁금했으나 만나봤자 폐만 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매스컴의 공세가 몰아친 다음에 양 웬리의 친척을 자칭하는 자들이 찾아왔다. 양 웬리보다 20살 많은 친척은 양 웬리의 손을 잡아 흔들며 10년도 전부터 그의 미래를 촉망했다고 말했는데, 양은 그렇게 자신의 장래를 촉망했으면 5년 전에 학비나 지원해주면 좋았을 것이라고 내심 생각했다.[* 다만 자신이 역사학에 재능이 있다보다는 흥미가 많았던 것 뿐이고 역사학도의 길을 걸었다면 결국 징집되어, 일반 병사로 전장에 투입되어 언제든 개죽음 당할 수 있었으니 차라리 사관학교를 들어간 것이 잘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긴 했다.] 양 웬리 본인은 애초부터 자기 출세나 영달에는 관심을 버린 지 오래였거니와, 언론의 천박한 관심에 혐오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문제는 양 웬리에게 집중된 관심은 민간인을 버리고 홀로 도주하다 포로로 붙잡힌 [[아서 린치]]의 추태를 가리기 위해 정부와 군부가 한 뜻이 되어 여론을 부추기고 있던 까닭도 있어 나가고 싶지도 않은 자리에 강제적으로 나가는 일도 비일비재. 온갖 스케줄에 치여 살다 보니 양의 몸은 녹초가 되었고 하루가 멀다하고 자신을 찾아오는 취재 열기는 양의 불쾌감만을 올려놓았다.[* 다만 그래도 남을 죽여서 영웅이 되는 것 보다는 남을 살려서 영웅이 되는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다.]양 웬리가 유일하게 기뻐했던 것은 사관학교 시절 교장이었던 [[시드니 시톨레]] 중장이 미소지으면서 딱 한 마디로 "잘해 주었네."라고 칭찬했을 때 뿐. 이외에도 2계급 진급으로 급여도 대폭 늘어났고, 더 좋은 관사가 배정되는 좋은 일도 있었다.[* 이들은 양 웬리가 순수하게 기뻐한 몇 안되는 일이었다. 특히 임관 1년차 중위가 하루 아침에 소령이 되었으니 영관급 장교의 해택이 더 크게 느껴질 것은 당연지사.] 더구나 상술한 이유로 진급은 했어도 양 소령은 한동안 새로운 보직을 배정받지 못하고 명령 대기 상태로 관사에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걍 특별 포상휴가 받은거다.~~ 양은 이런 미사여구에 질려하며 퇴역 생각만 할때 친한 선배인 [[알렉스 카젤느]] 중령이 통신화면으로 연락하면서 양이 겪은 일과 속마음에 대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양에 대해 그럴 줄 알았다면서 이해해주고 조언도 해줬다. 그 조연의 요지는 퇴역하면 기업에 불려가서 [[CF]] 광고를 찍고, 선거에 끌려가서 정계의 쟁탈전에 말려간다는 것. 양이 가장 질색인 광고 모델이니 아니면 솔리비전에 나와 무슨 게스트라며 토크쇼에 나와 주절주절거리던가 저런 정치인이 되던가. 참 아이러니하게도 양이 억지로 된 군인이란 위치가 저런 것에 대하여 지켜주는 셈이 되니 양으로선 꼼짝도 없이 그냥 군인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카젤느는 놀려먹는 짓이 아니라 잠깐 대기하라면서 자신이 인사장교이니 내 할 수 있는대로 노력해보겠다고 양을 위해 군부대 배속도 신경써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얼마 뒤에 [[자유행성동맹군 통합작전본부]]에서 [[브루스 애쉬비]] 원수의 모살설을 주장하는 투서가 날아들어 군 상부에서는 양을 비공식 조사위원으로 선임했고, 카젤느의 이런 선임안 전달을 듣고 발아들여 양은 브루스 애쉬비 원수의 과거를 조사하게 된다. 이후 역사는 [[에코니아 포로수용소 사건]]으로 이어진다. 이 사건으로 온 동맹의 스타가 된 양과는 달리, 이전까지 나름 '유능한 군인'으로 평가받던 아서 린치 소장은 군인의 책무를 저버린 대가로 크나큰 비난을 받아야 했다. 만약 그가 살아서 동맹으로 돌아왔다면 더욱 큰 처벌을 받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국군에 포로로 잡혀서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다만 그가 짊어졌어야 할 불명예와 비난은 관사에 남아있던 죄없는 린치의 아내와 자녀들에게 쏟아졌다. 린치의 아내와 아이들은 관사를 내쫒겨나듯 떠나야했고, 이후에도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과 세간의 관심을 참다 못해 법원에 이혼을 신청하고 말았다. 린치의 가족들은 결혼 이전 아내의 성으로 개명하고 숨어살고 있다는 사실을 교정구에 새로 들어온 동맹군 포로들을 통해 알게 된 린치 소장은 더더욱 절망하다 완전히 미쳐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한때의 실수'로 몰락한 만큼 [[파커스트]]나 [[드와이트 그린힐]]처럼 그를 조금이나마 동정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구국군사회의 쿠데타|자기 손으로 그 동정론을 깨부수고 동맹의 멸망까지 앞당긴다.]] 참고로 양 웬리는 훗날 [[엘 파실 독립정부]]를 수립하는 의사 [[프란체스크 롬스키]]와, 자신의 부관이자 아내가 되는 [[프레데리카 그린힐]]을 여기서 만났다.[* 양은 롬스키를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고, 프레데리카가 자신의 부관으로 왔을 때 당시 샌드위치와 커피를 줬던 일을 떠올려 기억해냈다.]~~프레데리카의 양 웬리 역키잡의 시작~~ 다만 이 사건으로 양이 불패의 명장으로 동맹 전체에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양 본인의 빈둥대는 기질도 있고 타인의 질시도 있어서 동맹군 내에는 양 웬리에 부정적인 인식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 군인은 소령으로 그칠 인간이 벌써 소령이 되었으니 인생 종쳤다고 말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엘 파실의 기적도 그냥 우연으로 치부당했다. 양 웬리가 진정으로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는 날은 9년 뒤인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부터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